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평화 문제의 해법으로 ‘교류(Exchange), 관계 정상화(Normalization), 비핵화(Denuclearization)’를 골자로 하는 ‘END 이니셔티브’를 제시했다.
이 대통령은 23일(이하 현지시간)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“가장 확실한 평화는 싸울 필요가 없는 상태”라며 “교류, 관계 정상화, 비핵화 즉 ‘END’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인 대화로 한반도에서의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(END)하고, ‘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’의 새 시대를 열어 나가야 한다”고 말했다. ‘END 이니셔티브’로 이름 붙인 자신의 대북 평화 구상을 유엔 데뷔 무대에서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.
이 대통령은 “교류와 협력이야말로 평화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은 굴곡진 남북 관계의 역사가 증명한 불변의 교훈”이라며 “남북 간 교류·협력을 단계적으로 확대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의 길을 열어 나가겠다”고 밝혔다. 또 “한반도 평화는 남북은 물론 국제사회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”며 “북·미 사이를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 노력도 적극 지지하고 협력하겠다”고 했다. 비핵화 해법으로는 핵·미사일 고도화 중단→축소→폐기 ‘3단계론’을 재차 꺼냈다. 이 대통령은 “비핵화는 엄중한 과제임에 틀림없지만,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냉철한 인식의 기초 위에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”이라며 “실용적·단계적 해법에 국제사회가 지혜를 모아야 할 것”이라고 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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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유엔 성취 묻는다면, 대한민국 80년 역사를 보라 할 것”
이 대통령은 “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 실현은 분쟁으로 고통받는 인류에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선물할 것”이라며 “대한민국은 ‘END 이니셔티브’로 한반도의 냉전을 끝내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기 위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”고 했다.
196개국 정상 중 일곱 번째로 유엔총회 연단에 오른 이 대통령은 “올해는 유엔 창설 80주년이자 한반도 분단 80주년”이라며 “민주 대한민국은 평화 공존, 공동 성장의 한반도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겠다”고 말했다. 이 대통령은 “대한민국 정부는 상대의 체제를 존중하고,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,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할 뜻이 없음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”며 “이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우선 남북 간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과 적대 행위의 악순환을 끊어내고자 한다”고 강조했다.
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한국 현대사의 발전 과정에 유엔의 기여가 컸다는 점을 강조했다. 이 대통령은 “누군가 유엔이 이룬 성취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‘대한민국의 80년 역사를 바라보라’, 이렇게 자신 있게 대답하겠다”고 했다. 이 대통령은 “대한민국은 그 자체로 유엔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온 나라”라고도 했다.
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·3 비상계엄 사태를 언급했다. 그러면서 “내란의 어둠에 맞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뤄낸 ‘빛의 혁명’은 유엔 정신의 빛나는 성취를 보여준 역사적 현장”이었다며 “세계 시민의 등불이 될 새로운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 완전히 복귀했음을 당당히 선언한다”고 말했다. 이 대통령은 “민주주의 회복의 경험과 역사를 아낌없이 나누는 선도 국가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”고 약속했다.
유엔 다자외교 무대에 선 이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 자격으로 24일 유엔 토의를 주재한다. 한국 대통령으론 최초다.
지난 22일 뉴욕에 도착한 이 대통령은 첫 일정으로 세계경제포럼(WEF) 의장인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과 면담했다. 이후 미국 상·하원 의원들과 접견하고, 300여 명의 미국 동포와 간담회를 했다. 이 대통령은 접견에서 “최근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우리 전문 인력의 구금과 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기를 바란다”고 말했다.
이 대통령은 또 최근 교착상태에 놓인 한·미 관세협상에 대해서도 “한국 외환시장에 불안정이 야기될 우려가 있지만, 결국 양측이 ‘상업적 합리성’이 보장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”이라고 했다.